참좋은교회

CHARMJOEN CHURCH

멋진 하나님의 사람, 맛깔나는 신앙생활, 흥겨운 성도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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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변화의 기로에서
작성자 : 작성일 : 2024-04-14조회 : 6

변화의 기로에서

서성거리며 목양실 책장을 둘러본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나를 보고 미소짓는다

손때묻은 책걸상을 비롯한 사무 가구들도 눈에 들어온다

허름하고 차갑던 방에 따뜻한 온기를 제공했던 친구들이다. 딱히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침실과 작은 방도 열어본다. 처음 이사 와서의 일들이 생각난다

보일러가 주방에만 들어오는 줄 알고 두서너 해 겨울을 지냈다

전기장판과 36.5도의 몸뚱아리 만으로 버티어 낸 것이다

그때 사랑하는 딸 혜주를 잃을뻔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군대를 경험했던 나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부들부들 떨면서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모습은 가장으로서 보기 힘들었다

아래층 당구장에서 물이 누수된다며 서너 차례 사나운 항의도 받았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별 의미 없는 화장실 공사도 두어 번 했다

유리창이 강력한 태풍에 파손되어 보험사로부터 구상권 청구도 받아보았다

덕분에 처음 판사 앞에 서는 경험을 해야 했다. 소액재판이라지만 적지 않게 충격도 받았었다

잘못 없이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구나! 늦게 한 수 배웠지만 말이다

계단과 화장실 유아실도 돌아본다. 오랜 세월을 이겨낸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입구의 대형텐트는 딱 한 번 사용했는데 먼지가 수북하다

옆에 탁구대도 몇 번 사용치 못한 채 텐트와 마주 보고 있다.

 십여 년 방치되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빈 화분들이 널부러져 있다

배에 금이 간 정도는 기본이다. 옥상 창고 안에는 웬 물건이 그리 많은지

수북이 쌓여 의미 없는 세월을 이겨내는 중이다

귀퉁이 화단에는 언제 심었는지 모를 달래가 여기저기 솟아나 있다

지난해에는 참외가 달렸었는데, 이것들을 키워내는 주님의 솜씨가 신비로울 따름이다

예배당 안도 둘러보다 의자에 앉아서 강대상을 바라본다

뿜어대는 내 침방울 받아내느라 고생 좀 했을 거다. 소 강대상은 교회 리더들이 찬송 인도하며 기도의 손때를 묻혔다

이 모든 것이 그저 고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자리 잡는다

올해를 교회 변화의 골든타임이라 선포했고 5월을 기점으로 제세했었다

그런데 벌써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에 와있다. 그래서일까? 손때묻은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익숙한 편안함에 미안함과 아쉬움도 안겨 준다. 그동안 울고 웃는 시간을 함께하며 정이 들 만큼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들과의 관계가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딱히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람은 특히 떠날 때와 머물 때를 잘 분별해야 한다. 범사가 때와 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때에 맞는 분별을 했다손 치더라도 과감히 실행하지 못하고 지내며 후회할 때도 많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는 말에 위안 삼으면서 말이다

머뭇머뭇하다 보니 어느새 종착역이 다가오고 있어 당황하는 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한 삶을 살았으며 위한다는 그것을 얼마나 이루고 살았던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리 살지 못하여 후회스럽다는 표현 아니겠는가! 마음을 비우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허전한지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은 것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딱히 대답할 말도 없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켜준 성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은 버티기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목회자로 지낸지 어느새 15년이 되었다

성도들이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성도는 목사를 목사는 성도를 잘 만나야 한다. 성도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좋은 점수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나쁜 목사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가 기준을 짐작하고 있기에 두려울 따름이다. 목회를 결심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물론 앞길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리라 믿는다

그런데 설레임 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그것이 내 믿음의 수준 아니겠는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지난주에 개척 교회를 섬기며 다른 일도 하는 목사님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 형편이 어려워 목사 이전에 어린 두 아들을 키우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일거리 찾기가 그리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목회만 해왔던 터라 기술도 없고 해본 일도 없다는 거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교회는 물론 가정경제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어려움과 시련들을 극복하라고 설교하던 자신이

막상 그 자리에 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거다

이렇듯 목사도 강단에서는 큰소리치지만, 어려운 환경에 봉착하면 대부분 두렵고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믿음까지 흔들릴 때도 많다. 성도들과 다르지 않은 성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하며 목회를 하는 것이다

변화의 기로에서 나는 다가올 미지의 시간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설레임과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본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2:18)

 

사랑방이야기 제 508변화의 기로에서

글쓴이 : 이 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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